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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 어때요?

이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_허수경 시집




[이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_  허수경 시집 




- 책에 담긴 시 한 편-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이름 없는 섬들에 살던 많은 짐승들이 죽어가는 세월이에요

이름 없는 것들이지요?


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

어느 백인 장교의 명령 같지 않나요

이름 없는 세월을 나는 이렇게 정의해요


아님, 말 못하는 것들이라 영혼이 없다고 말하던

근대 입구의 세월 속에

당신, 아직도 울고 있나요?


오늘도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읍을 지나 

신시를 짓는 장군들을 보았어요

나는 그 장군들이 이 지상에 올 때

신시의 해안에 살던

도롱뇽 새끼가 저문 눈을 껌벅거리며

달의 운석처럼 낯선 시간처럼

날 바라보는 것을 보았어요


그때면 나는 당신이 바라보던 달걀 프라이였어요

내가 태어나 당신이 죽고

죽은 당신의 단백질과 기름으로

말하는 짐승인 내가 자라는 거지요


이거 긴 세기의 이야기지요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이야기지요


시간은 있는데 마땅히 할 게 없는 그 특별한 시간, 

시 한 편씩 읽으면 마음의 평화와 장의 안정이 찾아온다. 

소설이나 에세이는 이어서 읽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으니, 

시집이 딱이다.


녀는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살아오면서도 도저히 삼킬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우리의 언어로 노래해왔다. 시인은 타향살이를 바탕으로 

더욱 견고해지고 넓어진 시야가 담긴 총 54편의 시를 소개한다. 

각각의 시안에는 삶을 다 살고 났을 때 내가 살아낸 것이 과연 무엇인가

 다시금 삶을 반추하게 하는 힘이 담겨 있다.